‘시조’의 맥을 잇다 [8]
회고가(懷古歌)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
오백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여말선초(麗末鮮初) 혼란기의 성리학자로,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고려말의 삼은(三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색 정몽주 권근 등 대학자들의 문하생으로 공부했고, 이방원과는 이웃에서 함께 친교하며 독서에 힘쓴 길재(吉再)는,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경상도 선산)에 낙향 은거하며 후학양성과 집필에 전념하게 된다.
야은(冶隱)의 학맥은 훗날 그의 제자 김숙자(金叔滋), 박서생(朴瑞生), 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해 사림파(士林派)로 계승하게 되었다.
그는 죽마고우 이방원(李芳遠)의 천거로 수차 관직을 제수받았지만, 스승 이색(李穡)의 가르침을 따라 매번 사직하였고, 이 완벽한 정형 시조는 평민 신분으로 송도를 둘러본 소감을 읊은 것이란다.
초장{오백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에서 500년 도읍지(송도) 경내를/ 한 필의 말을 타고 돌아치는 장면 표현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연결 대조(對照)했으며,
중장{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없다.}에서 자연 강산은 옛모습 그대론데/ 인재(충신)는 간데없이 사라졌다며, 산천과 인걸을 대비(對比)하여 변함없는 자연계(自然界)와 사라진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각성시키고,
종장{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에서 비통하다! 고려 태평성대가/ 꿈처럼 사라졌구나! 라고 회고와 탄식의 외침으로 절정을 토한다.
야은(冶隱)은 자기 심회(心懷) 전부를 단 3줄의 시조 1수로 표현하였다.
시조시인 알밤 황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