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전일 빌딩 245를 처음으로 다녀왔다. '245'가 전일 빌딩에 남아 있는 헬기에서 쏜 M60 기관총 총탄 탄흔의 숫자임도 처음 알았다.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벽과 천장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의 자국들은 어느 웅변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망월동 묘지에서, 도청, 5·18 기록관에서도 그날 오월의 광기에 스러져간 수많은 영령들과 평생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부상자와 유가족을 생각하면 절로 합장 기도를 하면서 오래도록 고개 숙이고 침묵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고 따라서 국민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 의무이자 사명이다. 그런데 위정자의 오심과 편향된 생각으로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역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의 진상을 밝히고, 위법자를 단죄하고, 적절한 보상이 되어야 하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이며,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그러나 전시장을 나오면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이 비극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광주 시민들뿐이었을까?
1980년 5월의 현장에 투입된 많은 군인들도 스무 살 안팎의 또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경직된 군사 문화가 지배한 군대 조직에서 명령은 곧 생명이었고,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그 사실이 국가의 권력에 움직인 그들의 죄를 사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 이웃이고 형제들인데 평생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전우의 죽음과 부상도 보았을 것이고 시민들의 피 흘리며 신음하는 고통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40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가 60대를 넘은 노인들로 평생 그 고통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때의 현장에서 있지 않았다 하여 동시대를 함께 숨쉬고 희노애락을 함께 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줄 아량과 자비심을 내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
불교에서는 사람과 업(Karma: 행위)을 함께 보지 않는다. 잘못된 행위는 분명히 살피되 그 행위를 한 인간까지 영원한 죄인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미워해야 할 것은 위정자와 명령권자들의 탐욕과 폭력이지, 명령을 수행한 그 들의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가 죄를 짓는 것이라 가르친다.
광주가 위대한 것은 단지 독재 정권에 항거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총탄을 휴대한 무정부 기간의 혼란 속에서도 시민들은 질서를 지켰고, 서로가 주먹밥을 건네고, 헌혈의 줄서기에 스스로 동참하면서 이웃을 돌보았다. 약탈도 없었고 범죄도 거의 없었으며 자진해 총기 반납도 하였다.
이러한 광주 공동체 정신은 총칼보다 강했고, 증오보다 따뜻하였기에 전 세계인이 민주 도시로 찬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계승해야 할 광주 공동체의 정신은 무엇일까?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발전할 수 없다.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살아 있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교훈과 가르침이 제대로 후대에 전하지 못한 죗값으로 우리는 또다시 12.3 계엄이라는 국민에게 총을 든 군인들을 보아야 했다. 다시는 군인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지키면서도 서로의 원한과 증오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라의 고승인 원효 대사는 화쟁을 가르치셨다. 서로의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길을 찾자는 가르침이다.
이제 5·18도 기억을 넘어 치유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희생자의 눈물과 회한을 어루만지면서도 국가의 명령 속에서 인간성을 잃도록 내몰렸던 사람들의 상처도 조용히 보듬을 수 있는 광주라면 그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같이 이해한 자의 용서이며,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지만, 이해와 성찰은 미래를 만든다.
광주는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어떤 희생 속에 이루어지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 광주는 우리 사회에게 화해와 치유 방법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진실 규명 속의 단죄 위에 세워진 화해, 책임 위에 세워진 용서, 기억 위에 세워진 국민 통합의 길.
그날을 위해 역사가 승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동시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광주가 시민군 계엄군이었던 모든 유가족, 시민, 군·경찰 등과 제주, 여수·순천의 아픔까지 함께하는 화해의 날 지정, 5.18 기록관이나 전일 빌딩의 한 켠에 계엄군들의 "증언의 방" 성격의 별도 공간을 두어 "이 공간은 국가 폭력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땅에 똑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인간의 고통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등의 취지문을 함께 하면서 더 나아 가 5·18 국민 화해 위원회와 같은 민간기구 설치들도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