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람시론]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또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마주했던 임인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허물을 들추자면 부끄럽기가 오십보백보인 정치판은 여전히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만 하는데 계묘년(癸卯年) 첫날 밝은 해는 또 무심히도 떠오른다.
남방불교 소의경전인 남전대장경 니까야 전승 설화에 둥근 달 속에 토끼가 보이는 이유가 나온다. 먼 옛날 브라흐마닷타 왕이 통치하던 시절 한 보살이 숲 속의 토끼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그를 시험하려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제석천왕이 찾아왔다. 그 때 가진 음식은 없지만 허기진 수행자를 위해 자기 몸을 보시하려 했던 전생 보살의 덕을 세상 끝나는 날까지 알리고자 제석천이 둥근 달 속에 토끼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토끼를 비롯한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계율을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설화다.
양심과 지각이 있는 이들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조그마한 잘못에도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간다. 그런데희생과 변화는커녕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정말 이해가 안 되고 답이 없는 사람들이 이 나라 정치꾼들이고 거기 떡고물에 취해 있는 이권세력들이다.
지난 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가 과이불개(過而不改)였다. ‘허물이 있어도 고칠 줄 모르는’ 참으로 완악한 정치를 풍자한 말이다. 왕도정치를 논한 맹자 ‘양혜왕장구’에 “백성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창고에 쌓인 곡식을 풀어 구할 줄을 모르고, 또 자신의 잘못을 다른 이에게 덮어씌우는 꼴을 비유하자면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죽였다’ 핑계를 대는 것과 같다”라고 한 말 또한 딱 이 시대 우리 정치인들을 빗댄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돼먹은 정치인들인지 하나 같이 잘못을 하고도 잘못했다 하는 자 하나 없고, 여야 지도부 모두 남 탓만 하고 또 지난 정부 핑계를 대는 행태가 그대로 닮은꼴이다.
진보니 보수니 허울 좋은 진영논리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기 패거리 잇속만 챙겼지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어디 내놓아보라. 말도 많고 허물 많은 야당 대표는 수많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임기 내내 소환돼 재판에 끌려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릴 판이고, 새 정부는 외교 안보 경제 복지 안전 뭐하나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해 가뜩이나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통합을 위해 사면 복권을 해준다고 슬그머니 풀어준 면면들도 국정농단세력과 나라를 거덜내려한 인간들이 대부분이라 국민정서와 거리가 멀다.
잠시 교묘한 말에 속아 별주부 잔등에 업혀 용궁까지 따라갔다 죽을 고비를 벗어나는 토끼처럼 새해엔 힘없는 서민들의 간까지 빼먹으려는 정상배들의 술수를 똑바로 간파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위기의 대한민국, 더 이상 국격이 추락하지 않고 국민의 삶이 도탄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덕경에 ‘기자불립(企者不立)’이라 발끝으로 서는 자는 오래 서있지 못한다고 했다. 부자연스럽게 억지로 꾸며 보여주려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온갖 언론을 길들여 없는 것을 포장해 놓았지만 허세가 드러나면서 신뢰가 가지 않는 정치인들과 그 통속들은 이제 다음 선거에서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말장난하는 정치꾼들도 이젠 정치 무대 근처에 아예 발끝으로도 서지 못하게 막아야 하겠다.
말을 못하게 하고 글을 못 쓰게 하면 탐욕스럽고 혼미한 것들이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벽에다가 소리를 지르고 낙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해에 바라는 간절하고도 소박한 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달 속의 토끼’처럼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정치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