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람시론] 정치인의 상식으로 볼 때 벌써 몇 번의 사과 성명을 내고 사퇴했을 사람 하나를 끌어안음으로 인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탱해 왔던 뿌리 깊은 민주정당이 지금 스스로 지지층의 외면을 받는 험난한 길을 가고 있다. 또 한편 집권 여당은 대선 승리에 공이 있는 젊은 대표를 가처분 논란 끝에 흔들어 낙마시키려고 당헌 개정을 위한 의총까지 여는 정반대의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민주당은 안목을 가진 분들의 많은 우려와 경고에도 기어코 무리수를 거듭하다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 후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선거에 진 후보를 ‘인천 계양을’에 공천함으로써 전체 지방선거마저 어렵게 만들고 자신은 간신히 국회 입성을 한 후 또 당대표까지 되어 결국은 당에 더 큰 리스크를 안긴 형국이 됐다.
민주당이 기존의 당헌 80조(부패 연루자에 대한 제재 조항)를 두 번의 강행 끝에 고쳐 놓은 것도 이재명 대표의 검찰 기소 사태를 예견하고 방탄막을 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주당 지도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자.
8월 17일 – 당헌 개정 비대위 의결
19일 – 검찰이 이재명 의원에게 서면질의서 송부
(26일까지 회신 요청)
24일 – 당헌 개정 부결 / 같은 날 중앙위 재상정
25일 – 당헌개정 당무위 재의결
26일 – 당헌개정 중앙위 재의결
28일 – 이재명 의원 당대표 확정
민주당 지도부는 왜 이렇게 스스로 운신의 폭을 옹색하게 해야만 하는가? 도대체 이재명이란 정치인이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부인과 자녀까지 그토록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키고 본인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뿐만 아니라 성남 FC 후원, 변호사비 대납, 대장동 의혹 외에도 검찰에 여러 건이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데도 그를 감싸고 버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정치인들은 불미스러운 한 가지 스캔들로도 사과 성명을 내고 또 사퇴를 하는데 말이다. 정치를 잘하라고 국민들이 뽑아준 170명의 선량들이 눈이 멀어서일까? 무엇인가 이권 카르텔로 연결된 것이 있어서 알면서도 말을 못하는 것인가?
야당탄압이라는 논리는 또 어디서 나온 것인가? 공소 시효가 임박한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검찰이 소환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공당의 대표가 떳떳하면 제 발로 가서 당당하게 해명하면 될 일이다. 야당 대표면 혐의가 있어도 검찰 소환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인가? 여당 대표도 경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는데 야당 대표는 무슨 특권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안타까운 것은 이재명 한 사람의 전례로 인해 대한민국 정치인의 도덕 검증 기준이 흐려지고 일찍이 대법원 판결문으로도 보았지만 그 한 사람에 대한 법 적용마저도 엿가락처럼 휘어지거나 늘고 줄었다하는 가치 혼돈의 시대가 온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재명 의원이 지도자로서 더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받는 부분은 자기와 각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무자비하지만 스스로에는 시시때때로 잣대가 바뀐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정치인을 장관에 기용한 링컨의 포용력 그리고 권모술수를 배제하고 ‘정직은 최상의 정책’이라 했던 처칠의 큰 도량은 아니더라도, 국민들은 믿고 신뢰할만한 정직성과 포용력을 갖춘 지도자를 원한다.
또한 정치인으로서 대선 후보까지 나왔던 공인이면 잘잘못에 대해 국민의 지지와 비난을 동시에 받을 수 있고 언론의 비판과 견제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야 마땅한데, 그것이 싫다면 애초 정치에 나서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국민 앞에 설 리더로서의 자격도 없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수식으로 있는 말이 아니라 오늘날 정치인들이 실천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평범한 소시민들보다 못한 도덕성에다 온갖 의혹에 그 말과 행동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이끌고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정말 답이 나오지 않는 정치판이다. 뉴스만 틀면 그런 이들의 말을 듣고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젠 피곤해 하는 민심을 읽고 있는가?
오늘날 이지경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 혹자는 뻐꾸기에게 둥지를 빼앗겨 도저히 복원이 어렵다면 상식을 가진 정치인과 당원들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라도 민주당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면 뼈를 깎는 자정의 노력을 하든가라고 말이다.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되고 개최되는 첫 의원총회에서는 공소시효를 며칠 앞둔 시점에 당대표가 검찰 소환에 응할지 여부를 정한다는데, 앞으로 진행될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수많은 의혹에 대해 검찰은 수사 때마다 계속 소환장을 보낼 것이고 또 기소가 되어 길게 재판이 진행된다면 자기 앞가림에 분주한 그들이 언제 민생을 챙긴다는 것인지 …….
인연과의 법칙에 따라 결과를 가져온 데는 반드시 원인과 과정이 있었기에 여야를 떠나 더 이상 함께 침륜에 빠지지 않으려면 애초에 문제를 만들어낸 이들이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매듭을 풀어야 한다. 말로만 나불대는 정치 말고 희생하고 행동으로 열매를 보여주는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전당대회 투표율에서 민심을 보았듯이 이미 생명을 잃은 민주당은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 지지율은 물론 다음 총선에서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 정당이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당권 경쟁에 매몰돼 꼼수를 남발하는 국민의 힘 역시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사분오열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