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람시론]서방세계의 외교 보이콧 가운데 치러지고 있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행사의 오성홍기 게양식에 중국이 우리의 고유 의상 한복 입은 인물을 등장시킨 것을 두고 우리에 대한 문화침략이 아니냐는 논란이 여기저기에서 일고 있다. 중국은 한족(漢族) 외에도 55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 일찍이 소수 민족에 대한 적절한 강온정책을 펴옴으로써 지금까지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한 다민족 국가 중국이 개최하는 올림픽 축제에서 그 나라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한복을 입혀 등장하게 한 것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 중화사상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이 취해온 입장을 알고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고대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 상고사의 뿌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일련의 동북공정 선상에서 보게 되면 이번 일이 문화적 동북공정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고 이를 너무 민감하게 생각해 대책 없이 소리만 높인다고 해결될 일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에도 14억 인구를 뒷배로 한 자신들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의 조회 수를 앞세워 우리 고유의 전통 의상 한복을 소수민족 조선족의 전통 복식으로만 소개함으로써 우리 고유문화를 중국 문화에 종속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리고 그 백과사전에는 종전에 있던 한복 페이지를 삭제하고 의도적으로 ‘한복은 중국의 옷’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우려되는 것은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중국 기업과 일반인들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 외교 보이콧에서도 드러났듯이 중화패권주의 정책이 고립 위기에 처하자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이 문화침략 공정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는 한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음식 김치의 기원을 중국식 야채 절임 ‘파오차이(泡菜)’라고 해 논란이 되어 왔었는데, 2020년 이후 아예 "김치는 중국의 파오차이를 한국이 가져다 이름만 바꾼 것이다"라고 드러내 놓고 주장하고 있다.
영토뿐만 아니라 문화 그리고 심지어 민족 정체성의 뿌리인 염제 신농씨와 치우 천황까지도 가져가 ‘중화삼조당’에 모셔두고 자기들의 시조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그만큼 유구하고 빛나는 것이기에 탐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류 문화가 세계를 주도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압도할 때 한복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을 욕하던 이들이 이젠 한복이 자신들의 의상이라고 하는 의식구조는 무엇일까? 말로는 스스로 대국이라 하지만 지극히 편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웃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푸른아시아센터’ 박일선 대표는 ‘문화역사침략 어떻게 맞설 것인가’라는 성명을 통해 “남 탓 전에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폐막식 때 선수단이 한복을 입으면 된다” 또 “단군조선 등 상고사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그들이 한글도 판소리도 중국 것이라 주장할 거라며 경고했다.
박 대표의 말에 우리는 뼈아프게 공감해야 한다. 일본이 그동안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 왜곡과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펼칠 때 우리가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되짚어본다면 더 큰 화근을 만들기 전에 지금이 체계적인 역사교육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웅혼한 기상으로 대륙을 호령했던 선조들의 역사를 스스로 부인하고, 뛰어난 문화를 지녔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르던 때가 있었다. 우리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 각성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오랜 진위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저술한 ‘환단고기’(삼성기전 상하편,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와 ‘규원사화’ 등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중화 사대주의와 불교사관에 치우쳐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매여 있던 편협한 한국사를 더 넓은 강역에서 유구한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비추어준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처럼 따뜻한 회남 지방의 귤이 북쪽으로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문화나 문물도 잘못된 풍토에서는 발전을 못하고 왜곡되거나 변질된다. 이젠 상대의 훌륭한 문화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면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상생의 법을 아는 이웃 나라들과 함께 살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