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사극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허준’의 원작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춘하추동 4권을 기획했었는데 아쉽게도 작가가 병마와 싸우다 타계하는 바람에 상중하 3편으로 총총히 마무리를 지었다고 한다.
소설과 드라마 속에도 일종의 감염병인 역병이 돌아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변을 당하는 일들이 그려져 있다. 요즘과 달리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린 많은 백성들은 더구나 면역력이 약해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대였으리라 짐작이 간다. 오늘날 전세계를 흔들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에 대처하며 오히려 그 위상이 제대로 알려진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는 의료보험과 함께 국민들의 보건의료에 대한 큰 짐을 덜어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서구 선진국들의 방역과 의료체계가 덩달아 무너져 내리며 사회 경제적으로까지 혼란을 초래한 이번 팬데믹 사태를 보아도 충분히 비교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자랑할 만한 우리의 의료체계에도 구조적 문제가 있고 어디에나 있는 기득권의 높은 벽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가로막힌 담을 헐지 못하면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더 많은 혜택을 잃어버림은 물론 나아가 더 계승 발전시켜야 할 고유의 귀한 것마저 우리 손으로 소멸시키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걸 경계하면서 이 참에 각당의 대선 주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많은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국익과 실질적인 국민의 복지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개화기 이후 서양의학이 들어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의료계도 여러 전문 분야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또 한편으로 이 땅에 수 천 년 면면히 이어오다 선조와 광해 조에 걸쳐 집대성된 고유의 의서 ‘동의보감’으로 대변할 수 있는 우리 전통 한의학(韓醫學) 또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왔다. 알려진 대로 국내에 굴지의 한의과 대학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또 여러 임상실험 등을 통해 새로운 의술을 개발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우리 고유의 귀한 것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의사 제도를 도입할 때 의사협회가 반대를 했는데 이제 침구술(鍼灸術)을 제도적으로 도입하려고 하자 한의사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을 넓히면 국익과 민생복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제도적으로도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쪽의 반발로 여전히 좌절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시급한 침구술(침과 뜸)의 계승이다.
국내에서 인정해 주지 않아 중국 북경 침구골상학원 객좌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구당 김남수 선생이 그 대표적 사례다. 구당침술원과 무극보양뜸센터를 열고 105세에 타계할 때까지 침구술 보급과 후학을 길러낸 구당 김남수 선생을 비롯한 신묘한 침과 뜸의 명인들이 이제는 연세가 높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 국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과 국민적 관심이 멀어지면 그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한의사 면허가 없었던 구당 선생은 한동안 '무허가 의료행위'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로부터 2011년 사회 통념상 용인 가능한 시술이라는 판단을 받기도 했다.
침술을 가르치고 시술할 수는 있으나 의료비를 받을 수 없다면 누가 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겠는가? 중국의 경우는 전승되어 오는 전통 침구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들은 침술로 마취까지 하고 수술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침술 명인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 좋은 인술을 밥그릇 싸움에 밀려 시술하지 못하는 것은 의료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의 직무유기라고 본다.
훈련기관을 설립해 일정 수련과정 후 검정을 통해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안마사 국가자격증 취득과정 같은 침구사 국가자격증 제도를 만들고 일정한 기준의 시설과 위생문제 등을 점검하고 책임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적 보완책이 마련된다고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침구술 분야의 명인들을 한의과대학의 교수로 초빙해 긴 안목으로 침구술을 전문의 과정으로 양성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대선 정국에 후보들도 인기에 영합해 표를 얻으려는 공약보다는 진정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며 국익에 도움이 되고 국민의 건강과 복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약들을 찾아 내놓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