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의 자국 고위 관리에 의한 성추행 피해 소식과 실종 의혹에 대해 뜻있는 국제사회 인사들이 중국정부를 압박하는 기자회견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2021년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자정 능력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년 대선과 맞물려 차기 권력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를 저울질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할 말과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난맥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여야 양당의 대선 후보들이 연일 도덕성 시비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여당 후보는 변호사비 대납과 부동산 특혜로 국민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는 대장동 의혹의 몸통으로 또 한 야당 후보는 검찰 수사 무마 건과 고발 사주 의심을 받는 가운데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현실이 암울하고 부끄럽다. 언론도 미처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의혹을 받는 사안들이 너무 많은 상황인데 어쩌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들의 면면이 이렇게까지 저급한 수준이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의혹을 밝혀야 할 검찰마저도 선택적 수사를 하고 양당 사이에서 언제 적당한 카드를 뽑아야 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다. 사람이 바뀌면 권력 시스템 자체가 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 권력에 목숨을 매달고 질주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언론 검찰 심지어 사법부와 종교인까지 오늘날 그 부패 카르텔을 키운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 국운을 가늠할 문제가 남북통일 문제일 텐데 양당 후보들이 평화 통일에 대한 비전은 있는지 또 내세우는 선거 공약도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실질적 약속인지 눈앞의 알량한 표를 얻기 위한 선심 공세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일국의 대통령 후보라는 분들은 성인군자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는 상식 수준의 언행을 해야될 텐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양당 후보와 캠프에서 던지는 말 폭탄을 보면 평소 그 의식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한 나라의 국격을 표상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통찰력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 국가 원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신뢰를 주지는 못할망정 국민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경박한 언행, 철학도 역사관도 없는 아무 말을 생각 없이 쏟아내는 것을 보며 놀라는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더 놀랍고도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이 엄중한 시국에 나라의 대다수 지성인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익히 보아 온 일이지만 권력에 한 자리를 얻으려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 공천에 사활을 걸고 비굴하게 충성 경쟁하는 지조없는 정치인, 뒷거래로 범죄를 덮어주는 사법부 재판관, 양쪽으로 줄타기하며 수사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는 검찰과 어디에 붙어야 떡고물이 더 큰지 저울질하는 언론들도 모두 한통속으로 보인다. 세계 최하위의 언론 신뢰도를 들지 않아도, 공정 보도와 예리한 분석 비판으로 금력과 권력을 견제해야 할 국내의 크고 작은 방송과 언론들은 언제부터 무엇에 물들었는지 그 투명함 잃고 민심과 여론을 제대로 비춰주지 못하고 있다.
이젠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受命)’의 절박한 심경을 유언처럼 쓰고 ‘단지 수결’로 낙관을 대신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대하기가 송구스럽다.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올곧은 목소리를 높였던 기개있는 선비들은 다 어디 있는가?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의롭게 일어났던 젊은 지성인들의 그 뜨거운 피는 식어버렸단 말인가? 자기 한 몸과 가족 보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머문다면 이 나라는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담벼락이나 SNS에 욕이라도 올리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뜻있는 이들이 해법을 찾아 한목소리로 시국선언이라도 하라. 일반 국민들의 눈에도 속이 드러나 보이는 불법과 적폐들을 못 본 척만 하겠는가? 2천 년 전 유대 총독이라는 변방의 자리 하나 보전하려고, 그의 무죄를 알고도 유대교 기득권 세력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준 빌라도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 속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오명으로 남아 메시아를 십자가에 내어준 사람으로 각인 되었다.
며칠 전 전두환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다시 한번 이 나라의 가진 자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90 평생을 살아오며 겪었던 영욕의 시간들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희생당한 민주 영령들 앞에 끝내 사죄를 못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아직도 그 누리고 있는 것을 놓고 싶지 않은 추종자들과 함께 저지른 역사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해서였을까? 크고 작은 그 욕심의 늪에 빠지면 주변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자명한 이치인 것을 …….
지난 날 현대사의 정치적 우여곡절을 헤치고 오늘날엔 코로나 팬데믹과 국내외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세계 TOP 10으로 올라서게 된 대한민국의 국격이 장차 부패와 혼돈 속에 뒷걸음치게 된다면 분명코 역사는 이제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바로잡지 못한 책임을 바로 우리에게 준엄하게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