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형사사법 체계는 권력의 전유물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국민의 마지막 울타리다. 제아무리 거창한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을지라도, 그 최종 목적지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적 법치 확립‘에 있어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다수 의석의 힘으로 강행 처리한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등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국민을 당혹하게 만들었고 당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당내 주류는 '노무현 정신의 완수'라는 말로 정당성을 강변하지만, 이는 역사적 진실은 물론 개혁의 본질을 호도하는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이 일침을 가했듯 노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사법 개혁은 그 본질이 달랐다. 검찰의 수사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해 특정 기관에 몰아주는 식의 소위 '검수완박'이 아니었다.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경찰이라는 거대 공권력의 독주 역시 철저히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상호 견제와 균형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그 본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제 장치 없는 검찰 수사권 축소를 '노무현 정신'이라 포장하는 것은 고인의 정신적 유산마저 정파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균형을 잃은 사법 체계의 폐해는 이미 국민적 합의도 없이 일방 추진한 입법 과정의 난맥상으로 드러났다. 긴급체포 등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은 수사 절차에서 검사의 사법적 통제 기능을 무력화하려다 거센 반대 기류에 부딪히자 조항을 슬그머니 정비한 일련의 과정은, 개혁의 탈을 쓴 이 법안이 얼마나 졸속이자 독선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는지를 자인한 꼴이다.
더욱이 대공·안보 수사권에 이어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무력화되면,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이나 정교해진 대형 범죄 수사에서 심각한 사법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소유지와 법률 검증이 부실해져 가해자가 법망을 빠져나갈 때, 그로 인한 국익 손실과 피해는 전적으로 국민과 기업의 몫이 되는 것 아닌가.
공소취소에 이어 애드벌룬을 띄운 대통령 연임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공소기각 사유 확대로까지 연결된 일련의 수순은 특정 권력자의 사법 리스크를 희석하고 퇴임 후 신변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용 위인설법(爲人設法)'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샤를 드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 1689~1755)는 그의 대표작 '법의 정신'을 통해 부패와 독재를 막기 위해 권력은 독점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그 핵심은 국가 권력을 입법권(국회), 행정권(정부), 사법권(법원)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검증된 국정운영은 물론 국민의 자유와 기본 인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자유민주 국가들이 표방하는 삼권분립의 기조인 것이다.
법의 정신은 사회의 건강한 질서체계를 유지하고 약자를 지키기 위한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형사사법 제도뿐만 아니라 모든 법이 권력자의 방패막이로 변질되는 순간 법치주의는 근간부터 흔들리게 된다.
입법독주 세력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편향된 사법 개편 명분을 삼는 궤변을 중단해야 한다. 양녕대군의 시편에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무십년권(勢無十年權)이라 권력의 무상함을 일깨워 준대로 정권은 유한하다. 하지만 사법 체계는 국가의 백년대계다.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또 법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각자의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의 기본 책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근본 '법의 정신'으로 돌아가 독소 조항을 철저히 검증하고, 사회적 약자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만이 무너진 사법 정의를 바르게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