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석농 오영선 선생과 6.25 전쟁영웅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태국 중령
작성자 : 취재부
작성일 : 1970-01-01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석농 오영선 선생과 6.25 전쟁영웅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태국 중령 (한국검경뉴스) 전북서부보훈지청(지청장 이우실)은 국가보훈처에서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무총장을 지낸 석농 오영선 선생과 6.25 전쟁영웅에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태국 중령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오영선 선생(사진제공:전북서부보훈지청)
석농 오영선 선생(1886~1939)은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며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 1907년 8월 일제의 군대 강제 해산으로 장교의 꿈을 접었다.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나 배일사상으로 인해 퇴학처분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은 함북 성진의 협신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참가하였다. 일제의 강제 병합 후 북간도로 이주, 독립군 장교 양성에 주력했고, 1920년 이후에는 상해로 활동 거점을 옮기고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으로서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을 보좌했다.
1924년 12월 박은식 내각이 들어서면서 법무총장에 선출된 선생은 정국쇄신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였고, 또 정의·신민·참의 3부를 설득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도록 합의를 이끌어 냈다. 임시정부 외곽단체인 대한교민단, 대한적십자회와 임시정부경제후원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임시정부의 개혁과 대동단결을 주장하던 선생은 1939년 상해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정부는 임시정부의 통합을 주도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아따난 중령(사진제공:전북서부보훈지청) 태국은 한국전쟁 시 한국을 지원해 준 아시아 최초국가로, 아따난 중령은 태국 최초로 우리나라에 파견된 군인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태국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한국에 파병한다는 의견을 모았고, 해군 프리깃함 2척과 수송선 1척, 1개 공군 수송기 편대로 구성된 파병부대의 대대장으로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중령을 임명하였다. 아따난 중령이 이끄는 태국 지상군 1개 대대 병력은 16일간의 항해 끝에 11월 7일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이후, 태국군은 UN군의 일원으로서 서울-개성 보급로 방어 작전, 수원 철수작전, 상주-문경 주보급로 경비, 춘천-화천 지구 진격전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파병기간 동안, 아따난 중령은 용맹하고 비범하게 태국군을 이끌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들은 전장의 ‘리틀 타이거’로 불리며 용맹을 떨쳤다. 임무가 끝난 후 아따난은 태국으로 귀국할 때 미국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